지산4리 월호 - 달빛 호수 속에 한숨[탄심]의 언덕을 안고 있는 마을
- 작성일
- 2016.07.21 16:18
- 등록자
- 정OO
- 조회수
-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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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湖 마을은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나주목 삼향면 한인촌으로, 1912년과 1917년의 자료에는 월호동으로 나온다. 광-목간 도로 삼향 지산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농공단지 밑으로 가면 나오는 마을인데 마을 입구에 잘 가꾸어진 양 갈래의 꽃길은 산뜻한 인상을 준다. 마을 앞에는 예전의 군사 통신기구인 봉수대가 있는 봉수산이 보이고, 마을 뒤의 산은 매의 형국을 띤 매봉산이 있으며, 북쪽으로는 청계면 복길리와 이웃하고 있다. 행정구역명으로는 삼향면 지산4리에 속하는 마을이다.
지명이 달과 호수가 있다는 月湖로 대단히 서정적 이름이나 원래는 한나라 사람이 살았다 해서 漢人村으로 불렀다. 그러나 자칫 하인촌으로도 들릴 수 있다 하여 쓰지 않고 마을의 지리적 특성을 따서 월호라고 지었다 한다. 마을 앞은 간척지이다. 일제 시대 간척 사업으로 지금은 농지가 되어 있지만, 간척이 되기 전까지는 밀물 때가 되면 마을 앞 넓은 들에 물이 차 호수처럼 보였는데, 그때 동산에 달이 둥실 떠오르면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마을 이름도 월호로 지었다 한다.
마을의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마을유래지의 기록을 보면 140여년 전 어부인 나주 나씨인 나민보가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마을 주변의 수려한 환경에 반해서 정착하였다고 하며 그후 김해김씨인 김명암이 120년 전에 일로읍 감돈리에서 이주하여 일가를 이루며 오늘의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명의 유래를 보면 훨씬 이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마을은 한인촌과 오리정으로 이루어졌다. 예전에는 한인촌과 오리정 사이에 넓은 평수의 대밭이 있었는데 복룡리의 농공단지를 조성하면서 흙을 파버려 현재는 없다. 마을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쓰레기도 분리수거가 잘 되어 있어 첫 인상이 좋다. 예전에는 주민들의 화합이 잘 되어 명절이면 부녀자들이 곱게 차려 입고 뒷산인 매봉산에 올라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기도 했으며, 마을에 무슨 문제가 일어나면 서로 미루지 않고 앞 다투어 처리 하였다 한다. 또한 앞산인 봉수산은 통신수단으로만 쓰여진 게 아니고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마을에서 중산골로 가는 산모퉁이에는 ‘용둠벙’이라는 용소(龍沼)가 있으며 지금은 집이 들어서 잘 보이지 않는데 집 뒤의 용바위에는 용이 승천 할 때 꼬리로 쳐서 흔적을 남겼다는 두 줄기의 골이 있다. 용이 살았다는 용둠벙은 세 꾸리의 명주 실타래가 다 들어가도 바닥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이가 깊었다고 하며 지금은 수로로 쓰이고 있지만 한때는 그곳에서 어른 팔뚝만한 장어가 수십 마리 잡힐 정도로 고기가 많았다고 한다.
한숨 고개가 있어
원둑이 막히기 전까지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 그때 배를 매었던 큰 당산목인 쥐엄나무가 있어서 당산제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어느 해 큰비가 왔을 때 넘어져서 베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마을에 생각지 않은 우환이 잇달아 생기자 신목인 당산나무가 없어서 생긴 일이라 여기고 주민들은 서둘러서 당산나무를 심었는데 그후로는 마을에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그 당산목은 큰 나무로 자랐다.
봉수산 기슭에는 절이 있었다는 절골도 있고 바위의 모양을 본 따 지은 범바위, 거북 바위, 말바위, 할매바위 등이 있다. 또한 바위가 네 개가 있다 해서 너바위(네바위)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또한 마을 뒤 골짜기를 각골이라 하며 왕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각골재라 부르기도 한다. 마을 앞에 있는 들은 해지안이라 부르기도 한다. 옆 마을에서 나는 ‘금동머리’ 감태는 전국적으로 유명해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가장골 산구덩이 고개 등의 지명이 남아있다.
이 마을에는 특이한 이름의 언덕이 있다. 주민들이 진등이라 부르는 언덕의 끝자락을 말하는데 풍수적으로 지네의 입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그곳에 묘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밭으로 경작하고 있다. 이곳을 ‘탕심이 언덕’이라 말하는데 광-목간의 큰 도로가 나기 이전에 무안 쪽에서 이 마을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거쳐서 들어오는 언덕이었다. 嘆心은 탄식하는 마음, 한탄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로써 전라도 특히 이곳 서남부 지역의 발음 현상을 볼 때 탄심이 탕심으로 바뀌어지지 않았는가 여겨진다.
하루에 네차례 군내버스가 다닌다. 봉수산을 축으로 중등포 마동 금동 이 마을 군부대를 돌아 나가는 코스이다. 목포터미널에서 들어오는 버스인데 주민들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마을회관 옆에는 들독이 세 개가 있다. 들독은 한국식 역도로서 품앗이를 하거나 일꾼들의 삯을 정할 때 사용된 기구였다. 이 기구는 면민의 날 등 행사가 있을 때는 마을간 남정네들의 힘자랑을 했다고 한다.
* 출처 : 무안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