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이 있는 곳 몽탄, 그리고 거기한우 - 거기한우 고봉석
일에 파묻혀 지내다보니 건강도 많이 좋아진 나를 보고 좋아하는 아내와 못내 미더운 시선으로 보아오신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흐뭇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뿌듯함을 느낍니다. 나의 희망은, 첫째가 건강이고 가족의 행복입니다. 둘째는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나의 경험을 통해서 보다 빨리 농촌지역에 정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농 도우미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모두가 잘사는 농촌 지역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제2의 인생을 꿈꾸며
IMF가 직장인들에게 가져다준 불행한 선물은 구조조정이었다. 구조조정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 인지도 그때 처음 알았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 상사와 면담을 하고 나서, 수 십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너무 쉽게 그만두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만약 나에게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무슨 일을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까, 물론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머리속에는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계획한 대로 살 수 있는 일거리가 무엇일까를 고민하였다. 일년이면 몇 차례씩 고향집을 가곤 하는데 동네에서 소를 기르는 친구를 보면 겉으로 보기에 여유롭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 보였다. 그때부터 나도 제2의 직업으로 시골에서 한우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귀농 생각을 한지 훌쩍 6년 정도가 지났다. 스트레스와 업무에 시달린 탓인지 건강이 좋지 않은 신호가 여기저기서 오기기 시작하더니 심장질환과 얼굴 한쪽이 마비되어 10개월간 치료를 하게 되었다. 더 이상의 직장 생활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독일 출장을 끝으로 21년간 근무한 회사를 그만 두었다. 아내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생전 안해 본 소를 기른답시고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며칠 동안 아예 말도 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말했다. “한 달간 전국의 우수한 한우 농가와 축산시험장 등을 견학해보고 나서 자신이 있으면 소를 키울 테니 동의해 주라”고 말하고서, 전화로 각 시군 농업기술센터 관련 공무원께 “직장을 그만두고 소를 기를 려고 하는데 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그러니 지역에서 소를 제일 잘 키우는 분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소개를 받아 보고나니 한달 정도 일정으로 다닐 만한 곳을 소개 받게 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양평, 강원도 횡성․평창, 충북 청원, 전북 익산, 전남 장흥, 경북 안동․울릉도, 제주, 대관령 한우 시험장, 농촌진흥정 축산시험장 등이 그 곳이다.
선도농가에서 축산을 배우다
2005년 5월 7일 경기도 양평군에 소재한 당너머농장에서 농장주 이현복 사장님과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하여 당너머가든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니까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사장님이 조금 늦는다고 하면서 녹차를 갖다 주셨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축사 옆에 가든이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불편한 점이 없는지 여쭤보았다. 왜냐하면, 축사는 냄새나고 파리가 많으니까... 그런데 당너머 농장은 파리도 없고 냄새도 전혀 없단다. 오후 5시경 이현복 사장께서 오셨다. 곤색 양복에 노타이 차림으로 머리는 나와 비슷하게 희었고 살아온 만큼의 고뇌와 정직함, 여유로움이 함께한 큰 바위 얼굴 같았다. 나이는 나보다 한살위인 개띠시란다. 내가 먼저 “처음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지도를 부탁드린다”고 운을 뗏다. 그리고 사료문제, 축산업의 전망, 분뇨처리 등의 질문을 드렸는데 이 사장의 대답은 의외였다.
첫째, 돈을 벌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라. 둘째, 먹거리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다. 셋째, 소를 기르다보면 자연이 50%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소를 키우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지만 그 이후는 자연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는 과잉 생산시 저장할 수 없고, 가격이 하락했을 때 무작정 갖고 있을 수 없다. 날씨나 전염병도 어찌 할 수 없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육 → 도축 → 판매 → 식육점 → 식당(또는 소비자) 등 생산에서 소비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부가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농민이 가난한가? 소는 송아지에서 출하까지 키우는데 적게는 24개월에서 많게는 31개월 걸린다. 이때 소득이 150~200만원인데 운송하는 사람은 잠깐의 시간 투자로 10% 정도의 이익을 취하고, 도축 후 판매자는 몇 배의 이익을 챙긴다. 그렇기 때문에 일관사육체계가 필요하고 고기도 공산품처럼 육질이 일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너머농장에서의 한 달간의 견학 내용을 요약해 보면
- 첫째, 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늘 소와 교감해라.
- 둘째, 민원이 발생되지 않도록 주변 마을 주민들과 잘 융화해라.
- 셋째, 이웃에 기쁨을 주는 축산을 해라.
- 넷째, 소를 개량해라. 그럴려면 기록관리를 철저히 해라.
- 다섯째, 자연에 순응하고, 생산비를 낮추기 위하여 조사료를 자가 생산해라.
- 여섯째, 숨어있는 부가가치를 창출해라.
- 일곱째, 축사 시설은 통풍이 잘되고 햇볕이 충분히 들게 건축하라
신념의 결실
2005년 6월 2일 드디어 시골로 가기 위하여 보따리를 쌌다. 눈물이 났다. 두려움도 있었다. 소를 기른답시고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오는 아들을 맞이하시는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으셨단다. 친구의 소개를 받아 뱃속에 송아지가 들어있는 암소 두 마리를 470만원, 430만원에 구입 하여 시골집 마당 한 켠에 있는 축사에서 기르기 시작하였다. 소 두 마리를 사서 매달려 있는 아들을 보는 부모님의 속마음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신단다. 인터넷과 축협 그리고 농업기술센터를 드나들며 소와 관련 있는 교육이 있으면 거리와 일정에 상관없이 쫓아다니며 사양기술을 익혀 나갔다. 축사 부지를 알아보느라 물줄기가 시작되는 곳은 모두 몇 번이고 다녀 보았다. 위치가 괜찮다 싶으면 이미 누군가가 들어와 있었다. 시골에 온지 8개월이 되도록 축사가 없어 동네 어르신들의 집에 몇 마리씩 송아지를 입식하여 숫자를 늘려 나갔다. 송아지 구입 조건은 가격이 많이 비싸기는 하지만, 결국 경쟁력은 암소의 자질에서 결정된다는 이론을 철저히 믿고 반드시 혈통이 있고 자질이 뛰어난 것들로만 구입했다. 주변에서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소를 길러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놈이 비싼 송아지만 구입을 하고 있으니.....,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축사를 짓기는 우리 지역의 형편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동네에 축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동네 어르신들을 어떻게 설득하여 축사를 지을 것인가 고민하다 정면 돌파를 시도하기로 했다. 마을 총회가 있는 날 어르신들께 말씀 드렸다. “축사를 짓기 위하여 부지를 아무리 찾아봐도 지을 곳이 없다. 그러니 마을과 인접한 동네 밭에다 축사를 짓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의외로 전원이 동의를 해주셨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부모님께서 살아오시면서 쌓은 덕을 내가 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축사 형태는 처음 전국을 견학하면서 이미 머리속에 담아 둔 대로 울타리만 있고 칸막이가 없는 즉 거의 운동장 같은 형태로 지었다. 칸막이가 없는 축사를 본적이 없는 어르신들은 우려와 비아냥스런 말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고 지었다. 그때 우려하고 걱정하신 분들이 지금은 모두 나의 축사를 모방하여 신축하거나 변경하고 있다. 쾌적한 축산환경 조성을 위해서 미생물제와 미네랄워터를 급여하고 축사에 살포해 동물복지는 물론, 냄새 없는 농장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무항생제친환경축산물인증, HACCP지정, 도지사 품질인증 등을 획득하는 성과도 얻었다.
또한, 어떠한 어려움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축 개량을 위한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10여년간의 노력끝에 현재 사육하고 있는 모든 한우의 혈통 등록 및 후대검정을 통한 밑소(송아지) 생산 기반을 확보해 외부에서 송아지를 구입하는 경우가 없이 자체 생산하고 비육해 판매하는 소위 일관사육체계를 구축하였고 그 결실로 최근에는 전국 한우 농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우육종농가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지금은 고급육 생산비율이 85%이상으로 두당 월 10만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우리도 저렇게 변해야 하겠다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뀌어 갔다.
바램
일에 파묻혀 지내다보니 건강도 많이 좋아진 나를 보고 좋아하는 아내와 못내 미더운 시선으로 보아오신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흐뭇해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나의 희망은, 첫째가 건강이고 가족의 행복이다. 둘째는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나의 경험을 통해서 보다 빨리 농촌지역에 정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귀농 도우미가 되는 것이다. 셋째, 모두가 잘사는 농촌 지역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러한 활동을 위해 “황금한우영농조합법인”을 구성하여 농가교육, 견학, 물품 공동구매, 암소 초음파 진단사업 등을 실시하는 등 지역 축산농가와 함께 생산비는 줄이고 잘사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봉사활동에도 나서고 있으며, 귀농사례를 다른 축산농가에도 전파하기 위한 강의도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