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것들
- 작성일
- 2024.08.02 17:42
- 등록자
- 박현화
- 조회수
- 602
2024 무안군오승우미술관 초대전
<연약한 것들>
전시기간: 2024. 8. 3.(토) ~ 2024. 10. 20.(일)
운영시간: 9:00 ~ 17:30(매주 월요일 휴무)
참여작가 : 이연숙, 조은솔
근대산업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겼던 철도는 확실하게 자본가와 노동자를 갈라놓았다. 전 세계에 앞 다투어 기차가 개설되었던 19세기 무렵에는 전문적인 근대병원이 세워지면서 정신병동이 새로이 생겨났으며, 파놉티콘의 응시를 갖춘 감옥이 건축되고 상하수도가 정비된 방사형 도로와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들어선 근대적 도시가 형성된 시기이다. 이 과정 중에서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동성애자, 여성과 나약한 남성, 정신병자, 유령, 미신이 사회로부터 대단위로 ‘타자’로 분리되었다. 사회로부터 분리된 타자들은 비가시성의 세계로 숨어들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처럼 추방된 존재들이 인간 세계의 실재를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타자의 세계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하는 자가 바로 예술가일 것이다. 미국 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우리가 가장 상처 입기 쉬운 상태, 실재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에게 가장 큰 힘을 부여하는 원천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어떻게 타자의 형상을 구체화시키고 실재를 드러내는가?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초대된 이연숙, 조은솔 두 작가의 작품을 통하여 주류에서 밀려난 이 연약한 타자들의 형상을 드러내고 낯선 자를 환영과 기쁨으로 맞이하는 깃털 춤으로 오래 전에 사라진 자연의 전설을 불러오거나 나약한 인간의 몸에 자연을 공유하는 생태프로젝트를 통해 죽음과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의 길을 보기로 한다.
박현화(무안군오승우미술관장)
<2전시실>
이연숙
/ 까마귀, 깃털, 붉은 바다
이연숙은 과거의 기억을 비닐봉지, 숟가락, 깃털, 종이 등의 연약한 모티프를 매개로 죽음과 상실, 트라우마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을 ‘지금, 여기’의 특정적 장소로 옮겨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잠재태를 일깨워내는 연금술을 통해 마침내 보편적인 진실과 윤리적 연대의 서사를 형성해내는 작가이다.
그녀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깃털 군무 작업은 2013년 호주 레시던시에 참여하던 중에 경험한 원주민 여성의 독특한 춤과 노래 그리고 신성시하던 깃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호주의 원주민이나 캐나다 킨카이족, 인디언, 그리고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모두 현대문명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된 타자들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 움직이는 깃털의 무리 앞에 최근에 개인적으로 겪은 여동생의 죽음을 상징하는 커다란 까마귀 형상을 놓았으며 오래된 삶의 흔적을 기록한 비문인 듯한 추상화를 매달았다. 가볍고 연약한 수많은 깃털들의 움직임은 작가가 호주 원주민들로부터 체험한 드리밍(Dreaming)의 세계, 신성하고 영적인 자연과 동물에 관한 숭배, 그리고 죽음 너머의 초월적 세계에 대한 원주민들의 믿음 체계를 표현하는 춤과 노래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깃털’과 ‘까마귀’, ‘비문’은 한편으로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제례로 시작되어 그녀가 그보다 앞서 겪었던 과거 외할아버지의 죽음과 연결되고 그래서 더 과거로의 여행길에 들어선 그녀가 호주 레지던시에서 경험했던 신성하고 영적인 세계에 대한 기억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작가는 이처럼 자신의 선형적 기억 사이의 잠재태를 뒤섞고 중첩시켜 ‘지금, 여기’의 공간으로 불러옴으로써 고대 인류로부터 전래되고 있는 사후 세계에 대한 가장 강렬하고 오래된 에너지와 연계시키면서 죽음이라는 타자가 무한의 세계와 소통하는 꿈에 관한 강력한 서사를 귀환시키고 있다.
<3전시실>
조은솔
/나무뿌리, 입과 목구멍, 식물, 약초
인간은 자신의 몸이 좋지 않은 기운으로 병을 얻을 때면 우리의 몸이 아닌 다른 성분, 즉 타자의 몸을 섭취하여 영양을 보충하고 병을 이긴다. 이처럼 타자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여러 가지 약초를 다린 물, 동물을 고은 액체 등 우리의 몸이 아닌 것들을 우리의 입과 목구멍을 통해 마시고 호흡하며 비인간과의 타자적 관계를 통해 고통과 상처를 회복하고 생명을 유지한다. 조은솔은 이처럼 외부와 내부환경, 그리고 자아와 타자가 관계를 이어가는 틈을 통해 유지되는 공유된 생명의 존재를 탐색한다.
‘나의 것이기도 나의 것이 아니기도’ 한, ‘식물도 동물도 아닌,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것들’의 공유 생태계에서 ‘틈’으로 갈라져 나온 조은솔의 생명체는 연약한 것들이 태어나서 죽기를 반복하고 죽은 몸들은 다시 재생되어 무성하게 자라나 계통을 형성하는 강인한 존재로 진화 중이다. 공유 생태계-조화의 묘약-공진화(coevolution)의 과정을 거쳐 생명과 죽음의 조화를 유지하는 무성한 계통을 지니게 된 그녀의 생명체는 공시성과 통시성을 가진 언어처럼 스스로 강인한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고 생태윤리학(Ecoethica)을 제시하는 새로운 ‘생태사회’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