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것, 만다라 혹은 모나드
- 작성일
- 2023.11.16 17:48
- 등록자
- 박현화
- 조회수
- 742
<세상의 모든 것, 만다라 혹은 모나드>
전시기간: 2023. 11. 17.(금) ~ 2024. 2. 12.(월)
운영시간: 9:00 ~ 17:30(매주 월요일 휴무)
무안군오승우미술관은 2023년 마지막 전시로 ‘세상의 모든 것, 만다라 혹은 모나드’를 주제로 미디어아트 기획전을 개최한다.
과학, 사회, 기후, 자연, 전염병, 전쟁 등 여러 측면에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시대의 특성을 바로크 역사와 깊이 연결시키고 있는 요즘의 네오바로크 담론은 19세기에 편향적인 이념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대안적 세계를 제시해주었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불교의 만다라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모나드와 만다라는 미소지각으로 감지되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미립자 세계의 찰나적 시공과 그 안에 주름과 겹주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감추고 있는 억겁의 시공이라는 이 역설적인 세계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이 역설의 두 세계는 인간의 영혼이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무한의 세계를 나타내며 단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란 우주를 하나의 세상으로 표상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세상은 동시에 무한한 우주를 반영한다.
예술가는 어떻게 세상의 모든 것들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편향된 이념이나 통념을 비판하고 있는가? 그리고 세계에 존재하는 양극성의 모순을 어떤 방식으로 화해시키면서 두 세계의 조화와 새로운 세계의 질서, 혹은 윤리적 측면을 표현하고 있는가?
현상을 보는 관점이 다양한 것만큼 작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그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전시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안군오승우미술관장 박현화
<2전시실>
박인선의 작업 모토는 ‘모든 본질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이다. 그녀는 땅과 바다, 건물과 인간, 도시와 자연처럼 상대성을 내포하고 있는 여러 현상들과 시공들을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하나로 연결하여 원형이나 타원 혹은 좌우대칭에 가까운 새로운 구조물로 만들고 있다.
물줄기1 watercourseⅠ, 91×91cm, mixed media on canvas, acrylic, 2021
물줄기2 watercourseⅡ, 91×91cm, mixed media on canvas, acrylic, 2021
미디어 작가인 임용현의 ‘무한의 지평선’은 매체의 본질인 빛에 대한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그는 ‘빛도 숨을 쉬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계속해서 던졌으며 이에 대한 답은 빛의 입자와 유기체인 인간과의 관계로 나타났다. ‘무한의 지평선’은 시공의 차원과 미립자(양자)의 파동으로서의 에너지는 상대적이며 인간의 영혼은 그 두 성질의 경계를 결코 나눌 수도 없고 파악할 수도 없는 무한의 세계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와 ‘미소지각’ 이론에 빚지고 있다. 더욱이 라이프니츠는 영상 미디어의 근간인 이진법 체계를 다듬었고, 그 체계를 직접 사용하였으며 미적분과 무한소의 존재를 밝혀낸 수학자이기도 하였다. ‘무한의 지평선’은 빛의 여러 성질에 의해 변화되는 무한한 우주의 현상- 반복 생성되는 기하학적 프랙탈(fractal)구조와 폭발(빅뱅), 파동과 에너지 등- 속에 외롭게 서 있는 개체적 실체인 인간의 존재를 표현한 작품이지만 마치 우주쇼를 벌인 듯한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다.
정나영의
이매리의 ‘시(詩) 배달’ 연작은 유적지를 발굴하듯 지층에 묻힌 오랜 문명의 역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록하고 ‘지금, 여기’로 배달하고 있는 작품이다. 올해 제작된 ‘시(詩) 배달#20230625’는 일제강점기와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굴곡진 삶을 살다 카자흐스탄의 묘지에 잠들고 있는 어느 한국 음악가가 수집한 민족음악 두 곡의 사운드와 평면작업의 결합을 보여준다. 음반에 담은 사운드는 ‘고려 아리랑’과 이 곡이 들어 있는 SP 판에 담긴 민속 음악이며, 평면은 금박으로 된 텍스트와 악보, 디지털 프린트라는 매체로 물질화(기록)된 역사적 사건들을 나타낸다. ‘고려 아리랑’은 1차 세계대전 독일과 러시아 전투에 참전했다가 ‘프로이센 수용소’에 갇힌 고려인 2세 김 그리고리와 안 스테판이 부른 것을 레코딩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평면과 사운드라는 단순한 매체의 표면이 반영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루 다 밝혀낼 수 없는 무게의 삶과 역사가 잠재되어 있는 지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1940년대의 디아스포라 음악가의 지난한 삶과 그가 ‘고려 아리랑’을 통해 불러낸 1917년 1차 세계대전 중에 고려인들이 겪은 굴곡진 역사로 망각이나 소실로 인해 우리의 영혼이 결코 헤아릴 수 없는 무게와 깊이를 지닌 시공의 이야기이다.
<3전시실>
김범수는 이미 상영되었거나 용도가 폐기된 공연장면, 다큐멘터리, 흑백 혹은 컬러 영화 등 다양한 종류의 필름 속에 잠재되어 있는 수많은 이미지와 스토리에 인위적인 요소인 빛을 개입시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일관되게 해온 작가이다.
사진작가인 조현택이 <스톤마켓-포천, 부산, 화순>연작에서 보여주고 있는 독특한 점은 석재상의 다양한 종교적 석상들과 탑, 무덤조각 등을 대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독특한 점은 작가가 일몰 혹은 여명의 새벽 길 위에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아스라한 시공이 만들어내는 각종 종교적 석상들의 낯설고도 기묘한(Uncanny) 아우라를 잡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스럽지만 속되고, 한 공간으로 모여든 여러 종교적 이콘은 평화롭지만 이질적인 신들의 긴장감으로 위태로우며, 성모마리아의 기쁨과 부처의 염화미소는 온화하지만 그로테스크하고, 구원을 위한 초월적 존재지만 궁극적으로 팔리기 위해 진열된 상품의 교태를 수반한다. 작품의 가로 크기가 거의 3미터에서 7미터에 이르는 실사적 규모의 사진은 거대한 성당이나 불교적 사찰의 건축물과 상응하면서 선과 악, 삶과 죽음, 인간의 욕망과 구원, 카니발적 희생과 생명의 생성이라는 극단적인 세계가 잠재되어 있는 종교적 만다라의 세계를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드문 개념미술가인 이예린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잠재된 혹은 주름으로 접혀진 세계를 사진, 회화, 영상,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러내면서 우리의 굳어진 통념들을 뒤흔든다. 그녀의 3분짜리 비디오 작품 <발밑 세상에의 노크>는 잠자고 있는 땅 밑 세상을 농구공 사운드로 두드려 일깨우고 건물의 바닥에 비친 구조물 사이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여러 정경을 다시 거꾸로 뒤집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바닥에 반영된 허상이 거꾸로 치솟아 실상의 세계를 차지한 것이다. 이 영상의 사진적 버전이
윤준영의 작품은 집, 망루, 나무, 새떼, 바위, 미로, 건물, 바다 등 언어의 구조처럼 상징화된 이미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인식 아래에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세계를 암시한다. 명확하게 상징화된 체계를 통해 끝을 알 수 없는 혼연한 세계의 존재를 끌어내고 있는 이 역설은 집, 건물, 나무, 광원 등, 작가의 기억을 통해 드러난 것들이 결코 파악할 수 없는 바다의 검은 심연 속에서 잠시 떠오른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것은 자아와 관련된 개인적 실체이면서 또한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보이지 않고, 결코 파악할 수 없는 우주를 자신의 세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실체적이고 물질적인 전략(매체)들과 끊임없이 사투하는데 그 결과가 한지에 먹, 콩테를 이용한 관념적 페인팅으로부터 바위, 돌, 합판으로 만든 집, 수조 등을 배치한 설치 작업으로 나타났다.
Space-believer, 30x30x30cm, 돌, 3d프린팅, 검은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