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서3리 대곡마을 - 학 형국으로 높은 지대의 마을
- 작성일
- 2016.08.02 16:24
- 등록자
- 조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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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운면은 말을 키우던 목장이 있었던 지역이 아니라 목장을 관할하던 관청인 감목관이 있었던 곳이다. 목관 터는 현재 망운초등학교 체육관이 있는 자리에 있었으며 당시 망운에서 관할했던 목장지는 세 군데로 지금은 모두 신안군에 속해 있는데 자은목장, 장산목장, 압해목장이다. 현재 망운면의 소재지는 예전에 목관 또는 목내라고 부르는 곳을 사등분하여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목동, 목남, 목서, 목북으로 나누어 부르고 있다.
이 목내를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삥 둘러싸고 있는데 이를 목성이라 부르기도 하며 대체적으로 나무의 수령은 300여년이 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추정컨대 목관이 설치되면서 심은 나무들로 여겨진다. 나무로 둘러싸인 소재지는 오목한 분지의 형태로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영광군에 속해 있었으며 인조 때 감목관 설치로 영광군 목장면으로 불리게도 되었다.
목서리는 목관의 서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목서, 내덕, 외덕, 장재, 목북, 대곡 등 6개의 자연 마을을 포함하고 있다. 里의 중앙으로는 809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밖으로는 망운-현경 간 외곽도로가 지나고 있다. 처음엔 영광군 망운면에 속했다가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목북리, 덕림리, 내덕리, 애당리, 대곡리, 장재동, 용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대곡은 목서3리에 속하는 마을이다. 마을은 소쿠리 형으로 해안 쪽을 향해 오목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학이 먹이를 찾아 날아가는 형국인데 마을 주변에 있는 뱀과 우렁이를 보고 쫒아가는 형국이다. 뱀은 마을의 해안선을 따라 왼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을 말하는데 주민들은 머리 부분에서 끊어졌다고 보고 있다. 이 끊어진 부분을 이으면 마을에 불구자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예로부터 전해지고 있다. 우렁이는 요강섬을 말한다.
마을유래기에는 이 마을의 유래를 ‘지세가 학 같은 모양으로 학이 집을 짓고 살았다 해서 한실 또는 대곡이라 칭하였다’로 기록하고 있다. 즉 학(鶴)이 머무는 골짜기인 학곡(鶴谷), 학실(鶴室)로 불리다가 한실로 발음되면서 이를 한자로 옮길 때 현재의 대곡으로 바뀌어 지지 않았는가 유추해볼 수 있다. 참고로 마을 이름은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는 나오지 않고 1912년의 자료부터 망운면 대곡으로 나온다.
이 마을은 복합성씨의 마을로 전주최씨와 김해김씨 그리고 한양조씨 등을 포함하여 여러 성씨들이 살고 있다. 이 성씨들 중에서 이 마을에 입향한 연도를 확인할 수 있었던 성씨는 전주최씨다. 입향조로 추정할 수 있는 최태극(자-순기, 호-월곡 1804-1878)은 현경면 현화리 월명촌에서 살다 주거 환경이 좋은 이 마을로 이주했다. 이 마을의 전주 최씨들 중에서는 주민들이 ‘최감찰 어른’이라고 불렀던 사람이 있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여건으로 보아서 1800년대 중반에 이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산이 없는 망운면에서 이 마을은 지형상 세번째로 높은 지대에 있다. 목북의 송전과 조산 마을 그리고 이 마을인데, 이 마을에서 현경면 해제면 운남면 무안읍을 볼 수 있고 날이 맑으면 목포까지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압창 해동 마을과 함께 망운면에서 가장 어렵게 살아왔던 마을이기도 한데 지금은 논에서 나는 소득보다 밭에서 나는 소득이 많아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원래는 옆 마을인 장재와 한 마을이었으나 1980년대에 분리(分里)가 되면서 장재는 목서6리가 되었다. 이 마을은 아랫마을 웃마을 건너마을 쑥댕이로 이루어졌다. 쑥댕이는 쑥당[艾堂]이라고도 말하는데 마을회관 아랫부분을 말한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수많은 기와조각과 그릇 등이 나온다고 한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동산리 애북 마을의 쑥 뒤와 비교되는 지명이다. 또한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인들이 망운 비행장과 비행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형비행기를 만들어 이곳에다 설치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당시 미군 비행기들이 실지로 가짜비행기에 폭격을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백중날에 당산제를 지내
마을은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옆으로는 신안군 압해도에서 현경까지 이어지는 4차선 도로가 지나고 있다. 간척지의 농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앞에는 무안국제공항이 있으며 옆에는 서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마을은 무안국제공항으로 인하여 피해가 많다. 마을 전체가 개발제한 구역이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해서 주민의 푸념대로 변변한 집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비행기의 소음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유래지에는 이 마을에서 ‘7월 백중날에 당산제를 지내는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 물을 마시고 당산제를 지내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지로 마을 아래쪽에는 4그루의 오래된 구수나무가 있었으며 구수나무 아래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은 수량이 풍부할 뿐 아니라 약효가 뛰어나 주변 마을에서도 먹으러 왔으나 지금은 길이 나면서 우물도 없어지고 아름드리 구수나무도 베어져 버렸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 샘에서 전개되었던 당산제가 있었는지 여부조차 모르고 있었다.
마을 앞에 안한실이라 부르는 들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잘 모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 일본인들이 비행장에서 사용하려는 기름통들을 보관했다. 한국전쟁 때 이 마을 주민도 2명이나 피해를 입었다. 단순히 경찰가족이란 사실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데 이런 현상은 망운면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마을 앞에 농지가 많으나 대부분의 소유주는 외지 사람이어서 주민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 주민들은 농사도 짓고 서해 바다에서 낙지 등 수산물을 잡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