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2리 청호마을
- 작성일
- 2016.08.22 13:51
- 등록자
- 홍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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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湖里
淸湖里는 일로읍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7㎞ 가량 떨어져 있으며 지역의 주변에 물이 맑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산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 건너에는 영암군 학산면과 서호면을 마주하고 있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남해안고속도로로 연결되는 국도2호선 대체우회도로가 무영대교로 연결되고 있다.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청호 또는 청호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주룡동, 용연동, 용동, 서룡정, 망해동, 비로촌 일부를 병합하여 지금의 이름인 청호리로 고쳐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주룡, 청호, 우비 등 세 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 주룡마을의 소포사와 경모재 그리고 충신정려각, 청호마을의 남평문씨 재각과 청망분교 그리고 청호교회가 있다. 우비마을에는 상사바위와 생기미 나루가 있다.
무화과의 원산지로 영산강 맑은 물을 바라봤던 마을 - 일로읍 청호2리 청호 마을
영산강 맑은 물을 바라봤던 마을
청호는 청호2리에 속하는 마을로 영산강 가에 위치하고 있다. 영산강 주변에는 호수를 나타내는 ‘湖’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대불공단의 三湖, 영암군의 西湖, 그리고 일로의 淸湖 龍湖다. 예전에는 영산강 물이 맑고 깨끗해 마치 호수와 같다 해서 즐겨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1789년의 자료인 호구총수에는 무안현 노촌면 靑湖리로 나오나 1912년의 자료에는 무안군 일로면 淸湖리, 1917년의 자료에는 일로면 청호리 淸湖동으로 나온다. 즉 한자의 표기가 靑에서 淸으로 바뀐 것이다. 참고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목포에도 청호의 지명이 많다. 예를 들면 靑湖로타리클럽 靑湖중학교와 靑湖시장 등이 그것이다.
이 마을에 제일 먼저 들어온 성씨는 박씨로 알려져 있으나 확인할 수 없었다. 현재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남평문씨 문중에서 입향조를 찾았다. 마을유래지에는 ‘경상도 창원에서 세거하던 남평문씨 문칠성이 청계면으로 왔으며 그의 손자인 문옥선(자 - 미보, 1638 - ?)이 1668년 이곳으로 분가하여 오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옆 마을인 주룡마을이 나주나씨 집성촌이고 그 마을의 입향조인 나덕명이 임진왜란 무렵에 마을을 형성한 것을 보면 이 마을도 나주나씨와 관련된 성씨가 입향조일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이 마을은 망모산을 주산으로 하여 앞에는 안산이 있으며 西龍亭 새모실 청호 등 세 마을로 이루어졌다. 西龍亭 마을은 청호 마을 남쪽에 있는데 왜 서용정이라 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새모실은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란 의미이다. 청호에는 윗첨 아래첨 큰잔등 뒷등 동쪽으로 불리는 지역이 있었다.
망모산은 주룡마을의 입향조인 나덕명이 어머니를 그리워 했다는 데서 연유한 효자산으로 청호리와 망월리의 6개 마을이 주산으로 하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남해안 고속도로로 연결되는 한반도 서남부의 L자형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또한 마을 주변으로는 철로 건설이 계획되고 있어 주민들은 개발에 대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서남부 지역 무화과의 원산지
이 마을은 예전엔 목화를 주로 재배하였으나 현재는 서남부 지역 무화과의 원산지이다. 마을 곳곳에 심어진 무화과는 해방되던 해에 목포 갓바위에서 재배되던 것을 인분을 실어 나르던 한 주민이 가지를 꺾어 마을에 삽목하여 번식한 것이 현재의 단지로 발전하였다. 이런 무화과 단지는 아랫 마을인 우비마을에도 많이 있는데 유독 청호리에서 재배되는 무화과는 맛있기로 소문이 났었다. 왜냐하면 해풍의 영향과 따뜻한 기후로 당도가 높고 빛깔이 선명해 상품으로서 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산강이 막히고 해풍이 차단되면서 예전의 당도가 높은 무화과는 생산이 어렵게 되었다. 현재 마을의 주된 소득 작목은 무화과를 포함하여 시금치 갓 옥수수이다.
주민들과 마을 이장의 노력으로 친환경 마을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마을환경이 깨끗해졌으며 마을 입구의 꽃길 조성은 주민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또한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매년 여름철엔 삼복(초복 중복 말복)을 기해 마을 잔치를 벌였으며 경로잔치를 하기도 했다. 마을에는 바위틈에서 물이 나오는 앞샘 또는 통샘이라고 부르는 들샘이 있다. 윗샘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영산강 둑이 막히기 전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 왔을 때 영산강 주변에서는 각종 어류들이 많이 잡혔다. 몽탄 명산의 장어와 실뱀장어, 몽탄 갈산의 농게, 그리고 멍수바우 주변의 굴이 있다. 일로의 돈도리에서는 서리기, 짱뚱어, 맛, 게 등이 잡혔고, 아랫마을 망월리 비로촌에서는 서대, 낙지 등이 잡혔다. 뿐만 아니라 소댕이 나루와 주룡나루터 사이에는 상깽이(돌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일로 인의산 주변에는 맛, 게, 대가이, 짱뚱어가 나왔고 두껍바우 일대는 낚시보다 손으로 운저리를 더 많이 잡을 정도로 어종이 풍부했다. 청호 마을에서도 낙지 뿐 아니라 서대 숭어 등이 많이 나와 농산물을 재배하기 어려웠던 시절 주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한국전쟁 때 주민 중 두 명이 피해를 봤다. 그중 한명은 빨치산 투쟁을 하던 사람이었다. 마을에는 1994년에 설립된 청망분교인데 청호리와 망월리의 첫 자를 따서 만든 교명이다. 현재 이 청망분교는 남악리에 도청이 들어서면서 다시 부활할 기대에 부풀어 있기도 하다.
마을 앞에 배닿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배가 닿는 골이라는 의미인데 나주나씨 족보에는 ‘舟橋吐乙’이라 표기되었다. 또한 장짓등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장자등에서 변한 이름이다. 대체로 장짓등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한 샘이 두 개 있다 해서 쌍정(雙井)이란 지명도 있으며 장짓등 옆에는 조금에 건널 수 있는 조금나루도 있다. 또한 조금나루 옆에는 노랑샛금이란 지명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손버버리(산버버리라고도 함)라는 지명도 있다. 손씨 버버리 형제 셋이 묻혀 있다는 이름이다.
새모실에 남평문씨 제각이 있다. 제각의 현판은 없지만 삼문이 있으며 팔작지붕에 정면4칸의 기와집이다. 초가로 기울어져 가던 것을 1996년에 중건하였다. 1932년에 설립한 대한예수교회 장로회 소속 청호교회(정의건 목사 시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