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를 본다
- 작성일
- 2025.09.11 09:14
- 등록자
- 박현화
- 조회수
- 1031

기획의 글
1. ‘기억이 나를 본다’
요즘 한국 전쟁이나 여순 사건, 제주 4.3 항쟁, 5.18 민주화운동처럼 아직도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진실과 잊혀진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카이브 미술’이 한참 부상하고 있다. 할포스터(Hal Foster)는 동시대의 ‘아카이브 미술’을 거론하면서, 이들의 자료들이 사실이나 진실을 증언하는 공식적인 아카이브의 성격을 위반하고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면서, 사실적이지만 허구적이며 지표성을 내포하지만 재구성되며 이러한 아카이브들이 혼재되어 배열되는 특징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처럼 작가의 감정이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아카이브 미술은 기존의 실증적 역사를 뒤흔들면서 망각된 진실이 노출되도록 유도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아카이브 미술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이번 ‘기억이 나를 본다’ 전시는 한국의 금혜원, 김설아, 나현, 이세현, 임흥순 작가와 인도네시아 아리프 부디만과 마리얀토 작가를 초대하여 2000년 이후부터 부상하기 시작한 한국과 동남아시아의 동시대 아카이브 미술 경향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전시이다.
전시 주제인 ‘기억이 나를 본다’는 역사와 기억, 자연과 죽음이 서로 카멜레온처럼 녹아들어 있어서 ‘눈을 뜨고 나를 따라오는’ 과거의 기억은 현실 속에 너무 가까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Tomas Gösta Tranströmer, 1931~2015)의 시 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2. 포스트 메모리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선언했고, 어떤 언어나 이미지로도 그 실재를 표현할 수 없었던 이 시기는 ‘영점 시대’라고 일컬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재현할 수 없는 시대라는 절멸의 선언은 독일민족의 모든 전쟁 범죄를 덮고 가해자로서의 낙인을 회피하기 위한 ‘나치-방법론’(NS-Methoden)과 겹쳐지면서, 유대인 학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영상 등의 아카이브와 재현의 이미지에 관한 커다란 논쟁이 일어난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들이 스펙터클한 사회에서 소비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가? 그러나 이미지로 재현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며 타자의 고통
과 동일시하고 희생된 이들을 애도할 수 있는가?
재현이 부재하는 황무지에서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이들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라 사진이나 인터뷰, 기록물, 영상 등의 매체로 이를 대면했던 ‘이후 세대’(generation after)의 작가들이었다. ‘이후 세대’ 작가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개인적으로 접하게 된 파편적 이미지로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알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들의 재현방식은 실증적 역사의 기록이라기보다 조각난 역사를 상상으로 메우면서 희생자들과 동일시하기 위한 여러 방식들과 전략들을 동원한다. 예를 들면 개인의 상상력을 통해 사라진 역사의 틈을 잇기, 혹은 잊혀지거나 금지된 아카이브를 찾기 위해 탐험하기, 발견된 파편들을 몽타주, 혹은 재-몽타주하고 재구성하여 다르게 해석하기 등의 방법이 그것이다.
비교문예학자인 마리안느 허쉬(Marianne Hirsch)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서구권에서 출현한 이러한 ‘이후 세대’의 아카이브 작업의 특성을 정리하면서 ‘포스트 메모리(post memory )’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았다.
3.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기
- 증언, 아카이브 열병, 재몽타주에 대한 사유
정치적 폭력이나 종교 혹은 이념 분쟁으로 학살되거나 기후·산업 환경의 재난으로 인해 대규모로 발생한 희생자들의 사라져버린 개인적인 삶의 흔적을 다루는 사후 아카이브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재현이 비극의 실재를 완벽하게 나타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데리다가 이야기한 것처럼 재현 불가능한 사실이 오히려 아카이브에 대한 열망이 끊임없이 지속되도록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러한 포스트 메모리 작업은 절멸되어 부재한 것들을 과거로부터 현재로 소환하여 집단의 기억으로 의미화 시키고, 아카이브 너머에 존재하는 타자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제의와 함께 애도의 과정을 거쳐 처참하게 학살된 이들의 영혼을 숭고의 위치에 머무르게 하는 일에 해당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망각된 타자(잊혀진 민중)가 현실의 세계에서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것을 의미하며, 세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인류 본연의 윤리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포스트 메모리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기된 허쉬의 ‘포스트 메모리’의 개념과 함께 ‘부재에 대한 재현’의 담론으로 전개되었던 데리다의 ‘아카이브’ 기억과 관련된 무의식, 그리고 디디 위베르만이 주장했던 노출되지 못했던 민중을 대면하는 재현의 방식과 인류의 윤리적 성찰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쉬가 ‘포스트 메모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게 된 계기는 클로드 란쯔만(Claude Lanzmann)이 제작한 〈쇼아〉라는 영화의 독특한 재현 방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오류의 가능성으로 비판 받고 있는 사진이나 영상 아카이브 이미지의 사용을 거부하고 쇼아 생존자들의 증언만으로 구성되었다. 아카이브에서 이미지보다 ‘증언’의 우위를 주장하는 란쯔만의 〈쇼아〉는 ‘가스실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부재한다’는 부정주의나 재현 자체를 금지하는 자들에게 건네는 일종의 재현의 방식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텔레비전 방영물로도 나갔는데 시청자들 사이에 유대인 학살 흔적의 절멸주의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크게 일어났고, 이는 허쉬의 ‘포스트 메모리’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되었다. 〈쇼아〉에서 희생자들의 ‘증언’으로부터 포스트 메모리 아카이브의 한 가지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것은 파편적이거나 뒤섞인 증인의 기억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상에 대한 제스처나 표정, 침묵들의 틈을 시청자들이 상상이나 개인적인 재구성을 통해 희생자들과 동일시를 이루면서 참상의 실재에 좀 더 다가가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이후 세대’들이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된 비극적 참상에 대한 고통으로부터 생겨나는 죽음충동이라는 무의식적인 측면이다. 자크 데리다는 아카이브 자체의 작동원리를 ‘죽음충동’으로 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아카이브 구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아카이브 열병’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아카이브는 언제나 사후적으로 구성되는 것인데, 기억의 위기를 붙잡으려는 열망으로부터 형성된 정동(Affect)이 쾌락의 원칙에 의해 망각이라는 죽음충동으로 진행되면서 아카이브가 구축되는 것이다. 아카이브 미술은 실재의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하므로 반복적으로 재구성되는데 이를 통해 경험 세대의 실증적 역사에서 벗어나 그 고통을 재빨리 소비하지 않고 지속시키면서 서서히 ‘집단의 기억’이라는 층위로 이동시키게 된다. 데리다의 주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반복적으로 구성되는 비극적 희생에 대한 아카이브 작업은 다른 대상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죽은)타자가 말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고 그의 기억이 집단의 기억으로 의미화되는 애도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절멸되어 사라진 민중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디디-위베르만이 제시했던 재몽타주 이미지이다. 위베르만은 민중을 재현하는 일의 난점은 민중이라는 것과 이미지라는 것 모두 모순과 다층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배태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 점은 한국의 민중미술 작가들이 ‘투시화된 노동자와 농민’의 모습으로 전형화된 민중의 이미지를 재현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민중의 개념에 대한 디디-위베르만의 새로운 제안은 1944년 8월,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라고 불렸던 특별작업반의 일원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의 절멸 수용소에서 목숨을 걸고 비밀리에 찍은 네 장의 사진과 같은 것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사진이나 영상의 이미지들은 거칠게 잘리고 불안하게 흔들리며 보잘것없어 보이는, 역사적 현실의 매우 작은 편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처럼 ‘미미한 이미지’, ‘지나가는 이미지’, ‘반딧불 같은 이미지’들이 재몽타주 되면서 이를 본 관람자들이 “상상 불가능한 것의 감정을 거쳐 획득한 상상력”을 통해 역사적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는 것이다. 디디-위베르만의 ‘재몽타주 된 이미지’에 대한 사유는 사진과 영상에 관한 포스트 메모리의 또 다른 재현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 한국의 포스트메모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은 나치의 절멸정책에 의해 증거들이 거의 소각되어버렸고 또한 인류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잔인한 행위였기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재현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세대’의 포스트 메모리 작가들은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현하기’ 위해 목격자의 증언이나, 사라진 아카이브 탐색하기, 그리고 ‘존더코만도’들이 목숨을 걸고 남겼던 불안한 이미지와 같은 파편들을 상상을 통해 재구성하기 등을 통해 진실의 역사에 다가간다. 서구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게하르트 리히터나 안젤름 키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 포스트 메모리 작가들이 등장한 반면, 한국은 2000년 이후가 되어서야 망각된 역사를 재현하는 포스트 메모리 작가들이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한국 전쟁의 수많은 실종자들, 여순 사건이나 제주 4.3 항쟁 당시 처참하게 수장되어버린 희생자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서 아직도 찾지 못한 수백 명의 행불자들과 같이 망각되어버린 민중들을 재현하는 일의 난관은 서구의 포스트 메모리 담론들로부터 그 선례를 찾을 수 있으며, 우리는 이번 초대된 작가들의 작품에서 ‘재현 불가능한 것들’을 재현하는 방식의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박현화 (미술사학자, 무안군오승우미술관장)
금혜원 Keum, Hye-won

금혜원, 가족사진-1974 식탁 위의 꽃병 Family Photo-1974 Flower Vase On Table, 디지털 프린트, 45×54㎝, 2018

금혜원의 <섬호광>(2018)은 외할머니(1915-2004)와 어머니 그리고 딸인 작가의 모계로 이어지는 세 여성의 70여 년에 이르는 삶의 흔적이 담긴 가족사진과 유품들 그리고 회고록 등의 아카이브를 리서치하는 프로젝트이다. 작품 제목인 <섬호광(閃互光)>이란 서로 다른 세 가지 색의 섬광이 엇갈려 비추며 항로를 밝히는 불빛을 뜻하는 북한어로, 작가에 의하면 “삼대의 삶과 기억이 교차하고 중첩되며 하나의 흐름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은유”한다.
전시는 ‘가족사진’ 연작, ‘아카이브’ 설치, ‘오디오북’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가족사진> 연작의 사진들은 제목과는 다르게 가족의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가 일부러 가족사진에서 인물을 제거해버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가족사진’은 인물에 의해 가려진 배경을 작가의 유추와 상상을 통해 재구성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인물을 제거하면서 복원되는 배경에 작가가 개입하여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재-몽타주 전략은 포스트 메모리 미술의 특징으로 과거의 기억에 작가의 상상력을 개입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할머니의 혈압계나 저고리, 구슬백, 어머니의 노트 등의 ‘아카이브’ 설치물은 삼대에 걸친 세 여성의 삶의 흔적과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주체를 제거해버린 유품들은 관람자의 상상과 해석이 가능한 하나의 정물로 변환되면서 특정한 가족의 수직적인 연대기는 수평적인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개인의 가족연대기적인 아카이브를 근거로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가의 이야기는 일종의 단편 소설형식인 오디오북 <야행 夜行>과 <불연 不然>에서 전개된다. 이 소설은 각각 광복 이후 월남상황과 전쟁 이후 혼란기를 배경으로 전개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딸인 작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업이다.
<섬호광>은 작가가 ‘삼대의 삶과 기억이 서로 교차하고 중첩된다’라고 밝히고 있듯, 70여년에 이르는 삼대의 가족연대기에 대한 리서치는 선형적 시간을 따르지 않고 뒤섞이며 과거의 기억과 현실의 삶이 혼재되어 있다. 이 연작들은 아카이브를 다루는 작가의 전혀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는데, 시대착오적인 과거와 현실 사이에 작가의 개인적인 상상이 더해져서 결과적으로 삼대의 가족연대기는 비선형적이고 수평적으로 재구성되어 여성사에 관한 담론으로 확장된다.

김설아 Kim, Seol-a
김설아가 태어나 오랫동안 머물렀던 고향은 지금은 회색지대로 변해버린 여수의 대단위 화학단지이다. 그녀는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버린 고향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시간으로 물러나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된다. 작가는 이내 사라져버린 마을의 낮과 밤의 풍경, 동물과 벌레 등의 서식지,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 같이 지내던 친숙한 사람들의 삶에 관한 기억들이 되돌아올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 기억해 내야할 형상들을 내면화하여 ‘지금 여기’로 불러내는 방법을 탐색하기 위한 긴 여정에 들어선다.
인도로 유학을 떠난 그녀는 불교와 힌두 철학이 절합된 ‘인간의 몸은 아홉 개의 문이 있는 도시(바가바드기타)이며 아홉 개의 구멍이 난 거대한 상처(밀린다핑하)’라는 시구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느끼는 살갗이나 표피, 털 등과 같은 미세한 감각과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역할을 하는 아홉 개의 구멍에 집중하게 된다. ‘거대한 상처’(타자의 고통)를 받아들이는 아홉 개의 문과 구멍으로 규정했던 인간의 몸에 관한 탐구는 ‘징후, 소문, 흉흉, 무너진 음성, 숨소리, 분열’ 등 <아홉 개의 구멍> 연작들로 나타났다. 이처럼 사라진 것들이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오는 통로(구멍)에 관한 그녀의 작품세계는 북극 킨카이트 지역의 이누이트족과 만난 후 변화를 맞이한다. 이누이트족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소멸되어버린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영혼과 신화에 관한 것들을 상상하거나 그들의 삶과 역사를 기록한 이미지 문화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이들과 깊게 교감한 작가는 마침내 ‘부재의 형상에 관한 재현의 방식’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이번 출품작인 <영혼의 모양> 연작은 이누이트족의 대화와 그들의 이미지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동물, 바람, 달, 선조의 얼굴, 어머니, 나’ 등의 부제를 달고 있으며 ‘고향을 가진 모든 존재들’의 잊혀진 과거의 기억과 관련된 것들의 모양을 드로잉한 것이다. <영혼의 모양> 시리즈는 이전의 <아홉 개의 구멍> 연작들과 함께 작가가 항상 화두로 여겼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되돌아올 수 있게 하려면 어느 곳에 시선이 머물러야 하는가’, ‘유령과 같은 과거의 것들이 현재와 뒤섞이도록 소환하는 통로는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세계는 우리가 지금 몸을 담고 있는 현재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배달되는 과거의 기억들과 뒤섞이면서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이며 무한한 타자의 세계와 연결된다는 작가의 오랜 수행적 태도로부터 얻은 결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현 Na Hyun

나현의 이번 출품작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년 동안 진행된 <나현 보고서 – 민족에 관하여>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이 보고서는 최근 한국 사회 내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이주민의 증가에 따라 다원화되어가는 문화적, 사회적 변화에 따른 수용과 갈등의 현상들에 주목하면서, 민족적 배타성이 끈질기게 내재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의 ‘민족’의 의미와 그 정체성을 리서치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학계에서 한민족의 시원으로서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베리아의 바이칼호를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으로 설정한다. 알흔섬은 바이칼호수에서 가장 큰 섬으로서 한민족의 원류인 몽골리안 코리족의 탄생신화를 간직한 곳이며, 바이칼인이 호수의 이름에 샤먼을 뜻하는 바이(Bai)를 붙였다는 것은 바이칼이 샤머니즘 신앙의 대상이자 주체였음을 짐작케 해주기 때문이다. 이후 작가는 원시시대 소금을 찾아 이동했다는 맘모스 스텝(Mammoth Step)과 염전, 철새, 고려 이주민과 쿠바 한인 이주민에 관한 단서를 찾아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장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간다. 맘모스 스텝은 이들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인류의 기나긴 이주의 경로를 알려주는데, 빙기와 간빙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홍적세, 유라시아에서 시베리아를 지나 아메리카 대륙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동 중에 일부는 정주하였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이동하였을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모든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 시원으로부터 그 장대한 시간을 거슬러 이주의 연속선상에서 존재해왔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나현의 민족에 관한 보고서는 “과연 민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의적이며 국민, 부족, 종족 등의 의미와 겹쳐지는 민족은 어떤 절대적 불변체 이기보다는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온 중층적 구조를 지닌 일종의 판타지이자 정치적 집단일수 있다. ... 역사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부정한다.”라고 결론을 맺는다.

마리얀토 Maryanto
마리얀토(Maryanto)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이며, 광주, 암스테르담, 싱가포르, 자카르타 등지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인도네시아는 오랜 식민의 역사와 자본주의적 개발로 인해 아열대의 풍부한 자연이 심각하게 파괴되었으며, 독재정부의 정치적 억압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마리얀토의 검은 대지의 풍경은 정치·사회적 구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과 인간을 향한 폭력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재현하는 일종의 메모리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검은 아크릴로 두텁게 덮인 캔버스를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내는 스크래치 기법을 통해 파괴된 자연과 잊혀진 장소의 기억을 현재로 재소환 한다. 작가의 세밀한 노동이 다층적으로 집적되어 보이는 무게 있는 흑백 풍경에서는 자바코뿔소의 사라진 자취와 붕괴된 맹그로브 생태계 그리고 탐블리앙 호수의 반얀나무의 전설 등 소멸되어버린 시원의 원시림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원시적 풍경 곳곳에 기계문명을 나타내는 검고 굵은 쇠파이프나 무기 등을 감추고 있어 신화와 현실이 날카롭게 교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퍼포먼스나 무거운 돌, 석탄, 텐트 등 설치적인 다양한 요소를 검은 풍경화와 함께 배치하기도 하는데, 이는 검은 아크릴층을 긁어내는 기법 역시 작가가 소멸된 풍경과 과거의 기억을 다시 현재로 불러오는 일종의 제의적 퍼포먼스로 여겨지도록 만든다. 인도네시아의 자연과 신화에 대한 기억을 식민과 근대화의 역사적 맥락과 연결시키고 있는 마리얀토의 검은 회화 작품은 사라진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도의 의미와 함께 부재한 것들을 재현하는 일종의 포스트 메모리 작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리프 부디만 Arief Budiman

아리프 부디만(Arief Budiman)의
미디어 아티스트이면서 영화감독이기도 한 아리프 부디만의

이세현 Lee, Se-hyun

이세현은 자신의 작업을 마치 탐정이 사소하고 미미했던 단서들을 따라가다가 마침내 숨겨진 혹은 사라진 사건의 진실과 마주치는 일에 비유한다. 생각해보면 탐정의 추적과정은 고대부터 동물의 발자국이나 냄새, 배설물과 같은 사소한 단서를 쫓다가 마침내 먹잇감을 발견하는 사냥꾼의 그것과 유사하며 그렇다면 아마도 인류는 단서(아카이브)를 쫓아 근원(진실)에 다가가려는 오랜 유전적 본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사진이 지니는 본래의 속성은 사진이 어떤 지표적 증거를 가지고 있든 추상화(抽象化) 되어 숨겨져 있든 그것은 과거의 것이며 죽음을 의미한다. 바르트가 이야기했던 가슴을 찌르는 푼쿠툼 같은 것은 이미 죽음의 층위 안으로 들어간 이미지로부터 발현되는 것으로, 죽음충동으로 인한 아카이브 열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이세현의 경우 바로 이 에너지(정동, Affective state)가 작가를 이끄는 본질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사진은 비극적인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는 단서, 혹은 재난의 현장을 기록하는 아카이브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다.
이세현이 자신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탐정과 같은 역할’은 관람자에게도 비슷한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데 그의 사진 읽기는 평범한 일상적 프레임 속에 숨겨진 작은 단서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에피소드-다시 찾아 온 그날, 2024>는 전일빌딩 건물의 부분을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열린 창문으로 내밀고 있는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이라고 쓰여진 팻말과 건물의 윗부분에 군데군데 붉은 마크로 표시된 총탄자국이 보인다. 2024년에 찍힌 전일빌딩 건물사진의 이러한 단서들로부터 우리는 마치 탐정의 소명을 받은 것처럼 이미지 역사의 읽기가 시작된다. 전일빌딩의 총탄의 흔적과 ‘탄핵’의 팻말은 1980년 5월 신군부가 내렸던 계엄령 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다 군인들의 총칼에 의한 탄압으로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던 사건이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 계엄령 선포로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세현의 <에피소드> 연작에 나오는 단서들은 결국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의 비상계엄령으로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했던 탄압과 학살의 역사와 실종된 민중의 주검에 대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서, 애도의 문화와 윤리적 성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역사는 또 다시 학살의 비극을 되풀이한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대면하도록 만든다.

임흥순 Im, Heung-soon

임흥순은 이번 전시에서 〈파도〉(2022)와 〈전망대〉(2022) 두 영상을 출품하였다. 〈파도〉(2022)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응우예 티 탄과 세월호 참사 당시 중학교 미술교사였지만 이 사건 이후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신안 씻김굿 이수자가 되어 진도에서 천도제를 지내고 있는 김정희 그리고 여순 항쟁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는 연구자 주철희의 구술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는 48분 40초 분량의 3채널 흑백/컬러 영상이다. 그리고 백석의 〈고야〉라는 시가 삽입된 눈 오는 밤풍경으로 시작되는 〈전망대〉(2022)는 25분 36초 분량의 단채널 영상으로 해마루촌 등 오두산 통일전망대 주변의 마을의 주민들이 6.25전쟁과 전후 분단 상황의 이념대립으로 겪게 된 고통스러웠던 삶에 관한 회상이 DMZ 풍경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오프닝 장면에서 흑백이 전도된 영상은 마치 과거로 건너가는 통로처럼 보이며, 인터뷰 영상과 DMZ 주변의 풍경이 주민들이 증언하는 1950년대 마을의 지도와 몽타주 되면서 흑백영상으로 전개된다.
임흥순의 카메라는 그 당시 어린 시절에 경험한 전쟁이나 사건을 느릿느릿 기억을 더듬으며 꿈꾸듯 진행되는 증언자들의 이야기를 담는 동안 감독의 위치나 시선이 화자의 공간을 넘거나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 경계의 틈 사이에서 관람자는 여순 항쟁이나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와 동일시를 이루기도 하지만, 임흥순의 영상은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것은 베트남 전쟁의 한국군 희생자의 증언으로부터 우리는 가해자와의 동일시가 일어나면서 동시에 윤리적 성찰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작가의 영상에서 구술형식의 증언 장면은 가끔 거미나 사마귀, 벌레 같은 곤충의 클로즈업 된 장면과 이어지거나 자연의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몽타주 형식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과거 죽음의 기억이자 동시에 삶의 현실이 비선형적으로 재구성되는 효과를 나타낸다. 임흥순의 증언자의 구술이 주축을 이루는 영상작품들은 한편으로 재현 불가능한 비극에 대한 재현의 방식으로 란츠만이 〈쇼아〉에서보여준 증언의 힘을 상기시킨다. 증언자가 기억을 이야기하는 언어와 몸짓과 표정은 관람자가 주체가 되어 상상으로 사건을 그려내는 허구적 이미지의 공간, 일종의 디에게시스(diegesis)가 형성되도록 이끄는데 이러한 과정이 증언자와의 동일시를 이루게 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2025년 무안 오승우 미술관의 《기억이 나를 본다(Memories Look at Me)》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디디-위베르만이 지적한 이미지의 잔존성과, 시간의 흐름을 꿰뚫고 흐트러트리는 힘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에 참여한 7명의 작가가 직접 모으거나 만들어낸 이미지는 개인과 집단의 과거 기억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과거의 이미지를 대면한 시점에서 작가가 새롭게 읽어낸 현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이미지 조각들을 모아서 보관했다가 정리하고 재창조하고 배치해서 관람자에게 제시한 일련의 과정들을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대상에서 비롯된 각각의 이미지가 각각의 관람자에게 지극히 사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감성과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양상을 목격하게 된다.
(…)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아카이브 미술(Archival Art)’은 가장 뜨거운 이슈이자 중요한 화두이다. 기록학에서의 아카이빙 개념과 달리 현대 미술에서의 아카이빙은 주류 미술사와 미술 비평, 역사 서술에서 소외되고 결락된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역사를 새롭게 구축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항 서사 또는 미술 실천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위 7명의 작가가 보여주는 것처럼 미술에서의 아카이빙 작업은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와 효과를 보여준다. 이미지는 시간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든다. 또한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정서와 인지에 의해서 이미지의 원형은 끊임없이 변형되지만, 이러한 흐름 안에서도 누군가의 기억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조은정(목포대학교 아트앤디자인 학부 교수) :
서문 「잔존하는 이미지의 힘 : 기억 그리고 공감」 _ 발췌

기억이 나를 본다
전시기간: 2025. 09. 13.(토) ~ 2025. 12. 21.(일)
운영시간: 9:00 ~ 17:30(매주 월요일 휴무)
참여작가 : 금혜원, 김설아, 나현, 이세현, 임흥순, 마리얀토(Maryanto), 아리프부디만(Arief Budiman)
